김 양동 작은 거인, 하버드, 펠로우 십
아직은 대학원생이라서 동기부여 주는 위인들에 넣기는 좀 이른 인물이다. 하지만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그것도 아주 시골에서 태어나 세계최고대학인 탑 3에 합격했으니 교우들과 선후배들, 선생님을 비롯하여 고향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뿐 아니라 이제는 하버드, MIT 및 이이비 리그를 가는 길을 터놨으니 따라서 가겠다고 꿈을 가진 후배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래서 '김양동은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워킹맘의 바쁜 어머니를 둔 덕분으로, 빨리 철이 들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생각대로 계획 세우며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하는 것을 터득한 것 같다. 김양동의 대단한 감동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김양동은 하버드에 합격하고 입학을 2년이나 늦춘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현실적 배경을 하버드측에 얘기한 것이다. 지도를 꺼내 놓고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며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며 대한민국의 남자는 전부 군대에 가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라고 그래서 2년 후 하버드로 올 수 있다고 한 하버드 측과 인터뷰 내용은 아직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어떤 핑계를 대며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하는 마당에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이다. 김양동은 하버드에서 제1저자 논문을 3편, 제2저자 논문을 1편 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하버드친구들이 대한민국을 잘 몰라서 일본인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은 K-POP으로 대한민국이 좀 알려진 상태지만 김양동 본인도 공부로 대한민국을 알리며 국악과 꽹과리, 태권도도 전수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어린 시절 및 학창 시절
남들은 8살에 가는 초등학교를 7살에 들어가면서 그것도 오른손잡이의 세상으로 만들어진 환경에 적응한다고 어린 나이에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때까지 워킹맘인 엄마품이 그리워 손가락을 빨면서 학교에 다녀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워킹맘은 가방만 들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목표를 주었고 그렇게 학교에 다녀오면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성적표에는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는다.'는 내용밖에 없었지만 부모님은 잘될 때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침 그때가 왔다. 그동안 공부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하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공부하고 싶어 하는 때를 맞이한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을 기점으로 천천히 공부를 시작하여 중학교 배치고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공부에 재미가 좋아진 것이다. 한해 빠른 선배 형을 만나서 롤모델로 삼았고, 그 이후 김현근(프린스턴대학교 합격), 홍정욱(하버드대학교 합격), 그리고, 고시 삼관왕(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으로 유명한 고승덕변호사를 롤모델로 삼았다. 중학교에서 영재교육원과 과학고를 목표로 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에 대한 일화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는 어린 나이지만 말만 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과학고등학교를 향해 추가로 공부하던 올림피아드경시공부 과목을 느닷없이 생물에서 화학으로 바꾸려고 했다. 고시와 같은 시험이어서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이고, 과학고에 가기 전 마지막 시험이었다. 시간은 3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참 난감했다. 하지만 공부하는 본인이 그렇게 하려고 하니까 일 년 넘게 지금까지 공부한 '생물과목'이 너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과목을 바꾸고 난 후 얼마나 과학고등학고에 가고 싶었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했으며, 옆에 있는 화장실도 시간이 아깝다며 뛰어다녔다. 놀랍고 대단한 정신력과 몰입이었다. 3개월로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다. 그 외에도 시련은 많이 왔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얼마 앞두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과학고등학교에 가는데 매우 중요한 마지막시험이었다. 그런 시험을 앞두고 장염이 걸려 15일을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과학고등학교를 가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께 애원을 했고, 선생님은 기본수치보다 60배나 더 올라가서 합병증으로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서 퇴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겨우 퇴원을 하고 3일 남은 시험공부를 과학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정신력 하나로 혼을 불어넣으며 몰입했다. 그 기세가 얼마나 엄청나던지 주변에서도 느껴지는 정도였다. 끝까지 놓지 않는 힘 그것이었다. 결국 전교 1등을 하였고 원하던 과학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담입선생님은 김양동에게 '병원에 입원한 것 맞느냐?' '혹시 산사(절)에 들어가서 공부한 것 아니냐?'라는 질문이 있을 정도였다.
사회에 미친 영향
김양동은 체육이 상당히 힘든 과목이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때 체육 실기시험이 농구공을 골대에 단 한번 만에 넣는 것이었다. 워킹맘 엄마와 농구공 넣기 연습을 하면서 선언을 했다. "오늘 농구공을 연속으로 3번 넣지 않으면 집으로 가기 않겠다." 그러면서 컴퓨터에서 농구공을 골대에 넣는 과정을 그래픽으로 뽑아 온 그대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김양동이라면 몰라도 운동이라면 거의 꼴찌 수준인데 3회 연속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은 11시가 넘었는데 공은 들어가지 않고, 체력은 다 소진되어서 더 이상은 지쳐서 점프를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온몸운 땀투성이가 되었지만 끝까지 3번 연속 고집을 부렸다. 자정이 넘었고 새벽 한 시가 되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워킹맘은 이미 지쳐서 기절할 지경이 되었고 김양동은 그럴수록 의지가 더 강했다. 드디어 새벽 1시 30분 결국 하늘도 김양동의 끈기와 노력에 감동을 받았는지 세 번 연속 성공을 할 수 있었다. 고요한 새벽인 줄도 모르고 김양동은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어둡고 조용한 운동장에 별이 총총히 내렸다. 바람 때문에 추웠지만 김양동의 온몸에 땀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하늘에는 북극성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김양동의 눈동자는 북극성보다 더 밝게 빛났다. 해냈다는 성취감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워킹맘은 김양동이 엄청나게 성숙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력이 기적을 만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것이었다. 김양동은 혼자 하버드를 간 것이 아니라 많은 시골 후배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었다
'읽으면 동기부여 주는 위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5.18 민주화 운동 (0) | 2023.05.18 |
---|---|
하재수 시대의 큰어른 당신은 기적이다 사회에 미친 영향 (0) | 2023.05.06 |
고승덕변호사 어린시절및 학창시절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0) | 2023.04.23 |
잭 도시 트위트 창업자 (0) | 2023.04.22 |
밥 아이거 월트 디즈니캠퍼니 CEO (0) | 2023.04.21 |